하루 빨리 탈피하기 위해 시작했던 특수교육을 받으며 나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노력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 상황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육비가 저렴한 장애인복지관에 다니고 있었으나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수입이 늘어나면, 다른 치료 프로그램을 받으려 하였으므로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또한 예정되어 있던 이사날짜도 다가오고 있었다. 새 보금자리 이주비용과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의 교육문제로 이사가 가능할지도 확인해야 했다.

우리들 삶의 자잘한 일상까지도 법과 규칙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었으며 하물며 특수교육관련 법까지 생각이 미쳐본 적이 없었으나 특수학교 유치원은 교육비가 면제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특수학교에서 지니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궁금하여 M정서장애특수학교 유치원 입학 상담을 신청하고 학교를 방문했다. 교감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며 지니를 지켜보시더니 굳이 여기에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시며 아이들의 성장을 대나무 마디에 비유하여 말씀해주셨다. 어린 대나무의 마디사이는 짧지만, 대나무가 커가면서 마디도 성장하고, 마디와 마디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되는데, 우리 아이들의 발달모습이 이와 같다고 하셨다.

이제 우리의 상황을 있는 대로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때까지 지니는 언어표현도 온전치 못하였으므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만 6세 장애진단을 받았다. 이리 저리 들은 정보를 종합하면, 장애등록여부에 대한 전산화가 되기 전이어서 이사 하고 동사무소(현, 주민센타)에 전입신고를 할 때,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으면 등록여부를 알 수 없게 된다고도 했고(1962년 주민등록법제정, 1968년 주민등록증발급, 2004년 6월 주민등록전산화 완료), 아이가 말하기 전에 진단을 받는 것이 수월하다고도 했으며, 일단 등록하고 나면 언제든지 취소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니 초등학교 입학 전에 진단을 받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999년 당시에는 장애진단과정이 엄격하게 체계화 되지 않았으므로, 표준화도구에 의한 검사 없이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하고, 의사는 지니에 대한 상황을 육안으로 평가하여 진단을 내려주었다. 정신지체 3급의 복지카드를 받아들고서, 의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장애가 인정된 아이이니, 다시는 나의 감정을 표출하여 거칠게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여전히 언어 발달이 늦어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유예하였다. 장애인복지관 특수교육을 계속 받고 있었는데,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복지관에서 1년 과정 주5일 조기교실을 기본으로 하고, 주 1~2회 개별 수업을 부가적으로 받고 있었다. 4, 5세 때, H복지관 조기교실은 교사 1인당 아동 3명 배치로 교사 3인과 9명의 아동이 한 반이었고, A복지관의 조기교실은 교사 1인당 아동 4명 배치로 교사 2인과 8명의 아동으로 구성된 수업을 받았다. 조기교육실의 선생님들과 교육환경이 좋아 보였고, 그곳에서는 지니의 자신감이 자라는 것이 보여, 두 곳의 장애인 복지관에서 2년씩 2회 총 4년의 조기교실프로그램을 받았다(조기교실에서 아이들이 좋아진 모습이 보이면, 프로그램 진행 도중에도 통합어린이집이나 통합유치원으로 데려가 버리는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조기교실을 4년까지 오래 지속하는 아이들을 당시에 필자는 보지 못했다.).

통합이 필요하다하여 H복지관에 다니던 2년째에는 오전 조기교실(주5일 2시간), 오후에 교회 어린이집에 3시간씩 6개월 정도 다녔다. A복지관으로 온 후에는 오전에 통합어린이집, 오후에 조기교실(주5일 2시간) 수업을 받았다. 지니는 조기교실에 들어갈 때, 차에서 내리면 뛰어 들어갔다. 반면 통합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는 교실 문 앞까지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갔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과장된 행동을 하며 호들갑스럽게 맞아 주는데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간신히 들고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갔다.


A복지관에서 두번째 조기교실 2년 과정이 끝나갈 즈음, 전에는 하지 않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복지관에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오는 어린 아이들, 어딘가로 돌진하는 아이들을 소리쳐 부르며 뒤따르는 선생님이나 엄마들의 모습 등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시선을 끄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지니는 아이들의 난감한 행동에 대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예전처럼 좋아하며 뛰어가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 복지관 수업을 종료할 때가 된 것으로 생각되어 초등학교 입학 시점에서 장애인복지관특수교육을 종료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가 편안해 하고, 좋아하는 것은 행동으로, 눈빛으로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눈빛과 몸짓과 행동은 그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언어이다.

정은미 박사  gwelfare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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