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이나 회고록이 특정 유명인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보통사람들의 자서전, 어르신 그림책 만들기, 어르신들의 자서전 ‘인생쓰기’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이런 기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자서전, 즉 생애사 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독자들은 한 시대를 살아낸 개인들의 이야기에서 그 시대와 삶의 문제를 대하는 관점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교훈이나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 개인이 삶을 온전하게 돌아보며 정리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의 생애포트폴리오 작업을 통하여 지난 20여년 지니와 우리가족이 지나온 삶을 정리하며, 앞으로는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 연구를 하면서 ‘아들의 생애포트폴리오도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니와 함께 한 시간을 통해서 필자는 ‘인내’와 ‘기다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이 상대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보여 지기도 했으나, 지니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다. 아들은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다.
필자와 지니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니 정도면 뭐가 문제가 되겠어.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에 혼자 잘 다닐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잖아.”

통합 상황에서 지니를 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다. 늘 누군가의 보호 속에서 자라난 아이여서 혼자 무엇인가를 해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사람과의 소통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 아이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취업상담을 다녔으나, 장애아를 대상으로 하는 곳에서는 너무 잘해서, 너무 기능이 뛰어나고 능력이 좋아서 적합한 직무가 없다고 하였다. 일반 취업 현장에서는 보호만 받고 자랐을 아이가 어떻게 함께 어울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제기했다. 장애는 정도가 ‘경한가, 중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장애는 현실이다. 장애인의 반열에 들어서 있는 이들에게 세상의 벽은 그다지 차이가 없다.

생애포트폴리오를 통하여 돌아본 지니의 성장과정은 마치 미리 짜여 진 시나리오처럼 보인다. 매 순간마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이 고마운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었다. 학령기교육을 마치고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아가야 할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은 아이가 독립을 할 수 있느냐이다. 기본교육과정의 ‘진로와 직업’교과 목표를 ‘지역사회 직무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길러 직업적 자립을 도모하는데 총괄 목표를 두고 있다’고 설정하였지만,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라는 것을 장애아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결국, 가족들은 장애아가 어디에서 지내게 되더라도 ‘삶의 패턴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그런 보살핌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견인의 보살핌을 받게 될 때에도, 그들의 인지적 발달이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여전히 예쁨을 받을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그런 아이로 길러져야 한다.

발달장애아들의 인지적 수준이 대략 십 세를 넘기기 어려우며 생활연령에 비해 정신연령이 어리다고 하였다. 필자가 공부를 하며 특수교육현장에 왔을 때, 장애아들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정신세계는 유아적이고 순수하며 밝은 모습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실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수교육현장에서 연구자가 만난 장애가 경한 아이들 중 많은 수는 오히려 더 상처받은 모습들이었다. 아이들의 장애가 경하기 때문에 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밝음과 순수성을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서는 성장과정에서 오히려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생애포트폴리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장의 요청으로 직접 생애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는 부모교육과, 교사대상의 컨설팅을 진행하였다. 교육에 참여한 부모님들은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수업 과정을 난감해 하셨지만, 마지막까지 참여하신 분들은 생애포트폴리오를 직접 완성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참여소감을 말씀해주셨다. 아마도 이분들은 계속 자료를 누적해가는 과정을 이어가실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 한다.

이모든 과정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 시세말로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지만, 장애자녀의 생애포트폴리오 만들기(부제 : 생애포트폴리오, 우리아이 스토리텔링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런 작업이 유사한 상황에 있는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그들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데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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