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누구나 다 ‘사적인 장소(Private Place)’가 필요하다.

※ 아스퍼거인은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에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의 행동을 보이는 특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퍼거 관련 선행연구들의 주제나 교육도 이런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그들이 보이는 결함은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요소가 되며, 그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의 연구나 교육은 그들이 지닌 한계점을 주변인들이 이해하고, 아스퍼거인은 그 장벽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아스퍼거 관련 연구나 교육은 아스퍼거인들의 한계점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는 폭넓은 관점이 요청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성격 혹은 특성을 변화시키거나 극복하는 데에는 대단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성격이란, 사람마다 다른 개인을 구별 짓는 지속적 고정적 특징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개인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언할 수 있게 해주거나, 환경에 대한 개인의 적응을 결정짓는 특징적 사고와 행동이다.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가 아스퍼거인임을 확인받기 이전 최종장애진단명은 ※자폐성장애였다. 국내에서 아스퍼거를 진단할 수 있는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많지 않고, 이 또한 자폐성장애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고유의 표현방식과 소통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일반인이 다수인 세상에서 장애라고 인정받고 있는 아스퍼거인은 세상과 마주하면서 소통의 어려움으로 혼란스런 시간을 보낸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연속선상에 있는 아스퍼거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연구나 교육은 다수인 일반인의 기준에서 선정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결함과 맞서게 한다. 따라서 ‘스스로 갇혀 있는 테두리’에서 나오도록 하는 목표를 설정한 교육이나 연구 체계는 지나치게 작위적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연구나 교육에 대한 적절성 더 나아가 효과성의 문제까지도 필자에겐 도전적인 의문으로 받아들여졌다.

교육을 시행하는 부모나 교사는 아스퍼거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적이 없는 외부인이다. 어쩌면 이 외부인들은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필자는 그들로 하여금 결함과 마주하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이 어려운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해주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나 ‘재능’을 찾아내어 교육과 연결하여주고, 자신만의 장소 안에서 힘을 기르며, 서서히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즉, 자신만의 ‘비밀장소(Secret Place)’를 찾아주고 그 속에 머무르며 스스로 회복하여, 세상에 나아갈 힘을 비축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정된 자기만의 장소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천천히 스스로 성숙하며 성장해 갈 것이다.
이런 필자의 견해는 스스로 자폐인임을 고백하며 자기 본성에 대한 탐구와 연구를 멈추지 않으며 자폐인에게 그들만의 ‘사적인 장소’가 왜 필요한지를 언급한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의 글로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다 ‘사적인 장소(Private Place)’가 필요하다. 자폐아동도 숨거나 자신의 내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들만의 ‘비밀 장소(Secret Place)’가 필요하다. 결국 자폐증은 ‘테두리 안, 자기만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장애다. 그렇기 때문에 자폐 아동은 그들 자신이 숨을 수 있는 안정된 것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숨을 곳이 있었으며 그 곳에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거나 재충전할 수 있었다(출처 : 어느 자폐인 이야기, 1997).

사람들에게는 사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장애인 역시 사적인 공간과 내면의 성숙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공간과 시간을 통해 장애인도 자신의 진로를 찾아갈 수 있고, 교육적 체험과 사회문화적 배경의 영향 아래 삶의 모습이 변화해 간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관한 관점은 주로 한계점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선천적으로 지닌 한계점에 모든 삶을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계점 극복이라는 적극적인 목적 없이 자신의 소질과 특성 개발을 통해 자연스럽게 삶을 영위해 나간다.

필자는 지니의 성장과정에서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23년간 지니의 성장과정에서 모아놓은 그림, 사진, 일지, 메모, 서류 등 기타 자료들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생애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장애아 개인의 삶은 혼자의 삶이 아닌 부모나 보호자와 함께 하는 삶이다.
생애포트폴리오에서 그려지는 필자와 지니의 삶의 맥락을 토대로 내부자의 관점에서 특수교육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그런 사례를 통하여 이 길을 걷고 있는 특수교육 관련 종사자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그들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자 하였으며 장애인평생교육의 기반으로서 생애포트폴리오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1947년 8월 29일-) 보스턴 출신 미국의 동물학자. 동물복지를 배려한 가축시설의 설계자이며,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준교수이다. [좋은생각]에 따르면 그랜딘은 자폐증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전문분야인 동물복지 전문가가 된 인물이다(출처 : 위키피디아).

※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초기 아동기부터 상호 교환적인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손상을 보이는 한편 행동 패턴, 관심사 및 활동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반복적인 것이 특징인 신경 발달 장애의 한 범주(네이버 지식백과) 빛의 분광(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는 의미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한다.

※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1944년 오스트리아 의사인 아스퍼거(Hans Asperger,
1906~1980)가 처음 발표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아스퍼거인은 사회적 상호교류에 어려움을 겪고 관심사가 제한되어 있으며 행동에 장애가 나타나지만, 다른 자폐성 장애와는 달리 언어지체나 인지발달 지연은 발생하지 않는다. 구체적 증상으로는 변화를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며, 동작이 서툴러서 몸놀림이나 표정을 읽기가 어려울 수 있다. 소리나 맛ㆍ냄새ㆍ시각 또는 감정에 예민하거나 둔감한 경향을 나타내고, 특정한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몰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외관상으로는 언어발달 지연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억양이 밋밋하고 단조롭거나 과장되기도 하며 현학적이거나 우회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고,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만 하고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사교력이 떨어져서 또래의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정은미 교육학 박사 /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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