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가명, 필자의 자녀)가 어렸을 때, 서둘러 치료나 교육을 받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매일 가는 조기교실(오전, 혹은 오후 2시간)과 통합어린이집(조기교실과 교차되는 시간), 주 2회 프로그램(30~40분), 주 1회 프로그램(30~40분), 주말 또는 주중 운동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적어도 4~5개의 프로그램들을 소화했다. 특수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5년 내내 이런 일과는 지속되었다.

특수교육을 받으면서 지니는 참 운이 좋은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놀이치료 선생님과 수업을 좋아하여 복지관에 도착하면 치료실로 뛰어들어갔고, 복지관에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들도 거의 대부분 ‘잘했어요.’였다. 1년 과정의 놀이치료가 끝날 즈음, 미술치료프로그램이 개설되었는데, 대상자는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많은 대상자 중에서 지니가 혜택을 받게 되었다. 엄마 품에 안겨 손잡고 그리기 놀이를 하면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은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춘 사람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복지관의 프로그램들을 잘 따라갔고, 속도는 느리지만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지니가 4살 때,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낙동강에서 보트를 타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부표 위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지니가 갑자기 깡총 물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지니가 물에 빠져 동동 떠다니고 있는데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악악 소리만 질러댔다.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이 물에 뛰어들어 지니를 건져 올려주었다. 물을 좋아하니 물놀이를 하려고 뛰어든 것이었지만, 그곳은 주변에 물풀이 자라고 있었지만 보기와는 달리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강물이었다. 이때, 생존을 위해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에 빠진 내 아이 정도는 살려낼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싶었다. 마침 S청소년수련관에 모자수영 프로그램이 있어 조기교실팀 부모들과 함께 주 2회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

조기교실 2년 과정이 끝날 즈음 A시로 이사를 했기에 A시의 장애인복지관 상담을 통해 ‘개별인지 수업’과 ‘조기교실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 즈음 H장애인복지관에서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는데, 마침 6세가 되는 지니가 조기 교실을 마치는 시점이라 바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전 살던 곳의 H장애인복지관과 A시의 장애인복지관 양쪽을 왕래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쁜 나날들이었다.

지니가 그리기 놀이에 흥미를 가지면서 이면지, 다이어리 등의 곳곳에 선긋기나 그림을 그리며 놀이를 하고 있던, 오빠가 유치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오빠에게서 지니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오빠의 책이나 물건에 낙서를 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면지나 철지난 다이어리, 달력을 대체하여 글씨가 없는 깨끗한 A4용지를 사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기능을 내세운 마우스와 윈도우 95 등장으로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A4사이즈 인쇄용지를 구하기 쉬웠고, 마트에서 묶음으로 판매하는 스케치북에 비해 사용하기도 편했으며 결과적으로 비용이 저렴했다. 당시 1박스 2,500장은 1만 5천원으로 몇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고, S의료원 소아정신과 1회 상담(30~40분) 비용은 7만5천원 내외였다.

장애인복지관에서 특수교육을 받으면서 병원 상담은 그만두었다. 어쩌다 한번 가는 병원 상담이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며 비용은 두 세달치의 복지관 특수교육 비용과 비슷했다. 또한, 대형병원을 다니며 일반적이지 않아 보이는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불특정다수의 시선이 버겁기도 했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1회 40분 내외의 상담보다는 주 2회 30분 놀이치료를 담당하는 복지관 치료사가 지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지니에 관해 실제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편하게 나눌 수 있었으므로 그가 전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은 투자한 만큼 기대를 불러온다. 장애아들의 교육이나 치료에 대한 효과는 오랜 시간이 경과 해야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회성 상담이나 단기 프로그램에 대한 과다한 지출과 기대는 결과적으로 나를 지치게 할 것이다. 지니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단지 구체적인 병명이나 치료가능성 등을 알기 위한 병원상담이나 검사들은 받지 않기로 했다. 부모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머무를 수도 있는 그런 행위가 지니를 긴장시키고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아 교육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숨고르기가 필요한 마라톤 경주이다.

정은미 교육학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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