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아기가 옹알이를 하고, 눈맞춤을 하며 방긋방긋 웃으면 남모르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아기에게 한껏 나름대로의 반응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아기들이 말을 시작하는 시기는 개인차가 있지만 늦어도 2돌 이전이다.

언어는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이며, 의사소통이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 ‘생각이나 감정, 정보 등을 교환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성언어는 의사소통의 대표적인 표현방법으로 아동의 어휘가 발달할 수 있는 적절한 자극과 경험제공으로 인지발달과 구조가 형성되면서 표출 된다. 즉, 스스로 말을 하는 순간까지 충분히 인내하며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음성언어가 늦어진다는 것은 특수교육현장에서 아이의 장애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3.6세였던 5월 어느 날, 지니가 서 있는 나를 안고, 정확히는 내 다리를 양팔로 감싸 안고 쳐다보며 ‘엄마’라고 불렀다.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엄마’라고 불러준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후 곧 말문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으나, 묻고 답하기가 시작된 것은 2년이 더 지나서였다. 오전 치료수업을 받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돈까스 점심도시락을 먹은 후 오후 조기교실 수업에 들어갔다. 조기교실 선생님과 약속하여 미리 짜여 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며, 대사 연습을 시킨 결과였다.

“점심 뭐 먹었어?”
“돈까스”
“지니는 몇 살?”
“일곱 살”

만 6.6세가 되어서야 지니는 상대방의 질문을 그대로 따라 말하는 앵무새 생활을 벗어났다. 지니는 말이 늦었지만 언어치료는 하지 않았다. 복지관에서는 작위적인 어색한 톤의 말을 하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말(따라)하기 수업’을 통해 말을 배운 것인데, 말은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한 음절 한 음절을 강조하여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니 그 표현이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그 부자연스러움이 없어지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어차피 느리게 가고 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러움을 택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부모들에게 대기실은 같은 이유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장애자녀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스스로 눈높이를 조정해가는 시간이며, 정보 탐색을 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집중적으로 교육을 할 시기였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정보를 들으면 꼭 찾아가 보았다. 언어치료 상담을 위해 강남의 요지에 있는 치료실을 찾아갔다.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2채의 아파트를 사용했는데 한 채는 사무실과 부모대기실로 이용한다고 하였으나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10평 남짓 아파트 한채를 수업활동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치료실이었다. 마침 한 아이와 선생님 한분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는데 텅 빈 공간에 미끄럼틀,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모형집이 하나씩 들어 있는 방을 보며 실내놀이터에서 혼자 놀아야 할 것 같은 썰렁함이 느껴졌다. 시설, 운영, 교육방법 등에 대해서 안내해주었는데, 상담료로 5만원을 청구하였고, 이는 A아파트 언어치료실 한 회기 수업비용이라고 했다. 내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 그다지 안타깝지 않았다. 장애인복지관 주2회 한달 수업비용은 대략 3만원 내외였다.

지니가 군것질을 하고 싶어 할 땐, 사고자 하는 물건의 가격보다 액수가 큰 지폐 한 장을 쥐어 주고, 작은 가게에 혼자 들어가게 하였다. 원하는 물건 즉 좋아하는 과자를 찾아들고 카운터에서 현금을 내밀면, 주인이 알아서 거스름돈을 지니에게 건네준다. 군것질이라는 욕구가 있고 가게의 용도는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먼저 알고 있으므로 몇차례의 연습만으로도 바로 실행이 가능하였다. 소통은 반드시 음성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읽기나 계산을 하지 않아도 그 상황에서는 물건과 돈을 교환하고 거스름돈을 받아오기만 하면 된다.

언어교육의 목표는 상호 의사소통이다. 실생활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경험은 아무런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다.

정은미 교육학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webmaster@gwelf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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