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가명, 필자의 자녀)의 23년 성장을 보여주는 생애포트폴리오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면서 이전 기록들을 재검하기 위해 2016년 1월 C병원을 방문하여 1997년 4월 재활의학과에 다녀간 기록을 확인하였다. 병원이 확장, 증축되면서 오래된 자료는 폐기되었다하여 자세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방문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지니와 내가 수차례 방문한 곳은 재활의학과 심리치료실이었고, 치료사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K로 기억에 남아있다.

복지관 부모대기실에서 들은 정보로 C병원을 찾아 갔었는데, 당시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는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외출 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버리는 등의 난감한 상황을 자주 연출하기도 했었지만, 혹시나 양육에 있어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와 전문가 상담을 통해 뭔가 속시원하고 획기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우리가 그의 연구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2, 3주 간격으로 몇 번 찾아갔었는데, 작은 과제를 제시해 주고 다시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었다. 그런 과제들이 이제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어느날은 미리 동의를 구한다거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없이 소꿉놀이를 해보라고 하며 비디오촬영을 했는데, 그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고 어색했었다. 평소 지니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 소꿉놀이 도구를 방에 흐트려 놓고 있었지만, 소꿉놀이 살림도구들은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는다거나 바닥에 쏟아부었다가 다시 쓸어담는 정도의 놀이였지 도구의 용도에 맞는 놀이까지 진전이 되지 않았었다.
달리 말하자면 관심이나 반응이 없는 아이에게 익숙해져서 지니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이에 걸맞은 시도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바른 표현이었다. 놀이나 활동들은 지니가 관심을 보이는 것 위주로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러니 ‘엄마가 놀아줄 줄 모르네.’라는 치료사의 말에 당황하고 속상하여 돌아오면서 내가 어떻게 전천후가 될 수 있는가? 하며 스스로 합리화하며 위로하였다. 7만원 가량 비용을 지불하면서 몇 번을 갔었는데, 치료사의 처치나 요구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고 갈 때마다 맘이 편치 않아 그만두겠다고 하자 이렇게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몇 번 더 오라고 했다. 행동치료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산책 중이거나 백화점 쇼핑 중 바닥에 벌렁 드러누울 때는 한 곳을 정해 온 힘을 다해 힘껏 때려보라고 하여 정말 온 힘을 다해 허벅지에 손자국이 날 정도로 때려보았다. 두세 번 반복되자 ‘일어나’라는 한마디에 지니가 벌떡 일어났다. 교육을 위해서 엄격해져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지만, 물리력을 가해야 하는 이런 처치 방법들이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24시간을 함께 하는 상황에서 훈육과 사랑이라는 것의 경계를 정하기 어려웠다.

집안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려던 행동은 지니의 물건들을 모두 아래로 내려놓으니 부분적으로 해결되었다. 어른과의 외출은 어린아이에게는 즐거울 일 하나 없는 지루한 일이다. 재미도 없고 그만두고 싶은데 이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벌렁 드러누워 버렸던 것이었다. 좁은 공간에 물건을 쌓아 정리해 놓으니, 이 또한 말로 표현할 줄 모르는 지니는 직접 몸을 움직여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 높은 곳을 올라가려 했던 것이었다.

지니를 안고 천천히 이런 상황을 설명하니 알아듣는 것도 같았고, 문제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이 오래 걸리기는 했으나 지니를 바라보며 견디고 참아내는 내적으로 치열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서서히 사라지며 새로운 행동들로 대체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지니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세상을 함께 보는 연습들을 하게 되었다. 지니의 행동이 아닌 지니의 마음의 방향을 함께 보려는 시도였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어차피 느리게 가는 교육이니 굳이 닦달하며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정은미 교육학 박사 /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저작권자 © 강원종합복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