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품에 안겨 종이와 펜으로 놀이를 하던 4세 때, 처음으로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가 사람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을 보았다.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고, 소중하게 여겨져 5cm 정도의 작은 그림을 잘라서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처음으로 표현한 사람의 모습은 머리와 몸통을 잇는 목과 팔다리를 한 줄로, 손과 발을 울퉁불퉁한 타원으로 단순하게 표현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5세가 되어 목과 팔다리가 두 줄로 표현된 더 발전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 놓았는데 이때부터 날짜를 기록했다. 지니가 대충 그어놓기도 하고, 그려놓기도 한 종이들을 살펴보며 어느 정도 형태가 갖추어진 완성된 그림을 발견할 때마다 한 줄로 표현된 목, 팔, 다리 선이 잘리지 않게 좌우 1mm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가위로 오려 주었다. 이런 모습을 눈여겨보더니 언제부턴가 지니도 자기가 그려놓은 그림을 엄마가 하던 것처럼 한 줄로 표현된 목과 팔, 다리가 잘리지 않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가위로 그림을 오렸다.

처음으로 발견한 그림 하나와 더 발전한 그림 두 조각은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다니다 보니 시간이 지나 누렇게 변하였다. 그러다 잃어버리거나 망가져 버린다면 그 아쉬움을 어쩔 것인가 염려되어 스캔하여 저장해 두었다. 파일로 저장하여 간직해두었던 그 그림 덕택에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 연구가 가능할 수 있었다. 지니가 그림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칭찬에 동기를 부여받는 것 같아서, 지니는 크면 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화가는 자기 그림에 사인을 넣는다고 일러 주면서 그림에 제목, 언제(날짜), 그린 사람(사인)을 넣도록 했다.

조기교실에 다니던 7세 때 복지관 책자 표지에 지니의 그림이 실렸다. 이때는 사물을 관찰하여 그 형태를 분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무언가를 긁적이거나 그린다는 것은 마음속에 떠오르거나 본 것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리는 그 순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니의 그림을 보면 일과 중 어느 한순간을 그리거나, 비디오에서 본 장면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었으니, 지니에게 그림은 훌륭한 놀이이자 생각을 표현하는 소통의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하여 제대로 된 대화도 원활하지 않았던 1학년에는 학교 일과시간에 적응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기 때문에 수업시간 중에 자리에 앉아 수업내용과 상관없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교실 풍경들을 눈과 귀로 저장하여 귀가한 이후 하루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니에게 그림은 또래 집단 속에서 인내하며 견뎌내는 힘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만9세 때, 학교 수업이나 생활 속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화면 전체를 사용하여 공간을 구성하였고 인물들의 감정이 드러날 수 있는 얼굴의 특징을 잘 묘사해 놓은 것을 보았다. 이때의 그림들을 보면서 지니에게 사물을 관찰하고 기억하여 표현하는 능력과 공간을 적절하게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특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중단되었으며, 오로지 통합학급교육에만 의존했다. 통합교육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었다기보다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심의 폭이 좁고 대화기술이 없었으며, 또래와 주고받는 이야기 주제가 한정되어 있었으나, 수개념, 읽고 쓰기 학습은 따라가고 있었으며,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므로 특수교육에서 도움받을 만한 것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특수교육프로그램들을 종료하면서 하교 시간 이후 온전히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제 특수교육과 관련하여 지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은 주변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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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미 교육학 박사 /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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