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특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중단했다. 그런 결정은 용기이면서 모험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어 교사가 집으로 방문을 하는 일반 학습지를 하고 있었다. 국어, 수학, 과학, 한자, 영어회화 학습지를 했는데, 학습지의 양과 진도에는 크게 상관하지 않고 진행해달라고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과목별로 비용을 지급해야하기에 방문학습지도 만만찮은 지출이었다.

그동안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가 놀이 삼아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 본격적으로 교육을 해보기 위해 주변 학원을 알아보았으나 대부분 유아 대상의 미술학원이거나 입시 전문 학원이었다. 입시 전문 학원 상담을 의뢰하여 지니의 상황을 설명하고 학원 교육과정에 주 2~3회 정도 참여하면서 서서히 익숙해지도록 자유롭게 활동하기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대신 한 학원의 원장님이 입시학원교육은 학교별 입학기준에 적합한 실기교육을 하므로 기교 위주로 획일화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게 되니, 틀에 매이지 말고 다양한 소재로 자유롭게 놀면서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지니의 경우는 취미미술학원이 적합할 것이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러나 인근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주변을 부지런히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찾지 못했다.

지니는 ‘미술학원에 가볼까?’ 하는 엄마의 물음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학교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 속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그 시간이 미술학원에서 그대로 연장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그리기는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 것인지 공감되어 지니의 의사를 수용하였다. 대신 입시 미술학원 인근에 있는 문구사가 아닌 전문화방에 들러 탄성이 나올 정도로 예쁘고 고급스러운 미술용품들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여 구매해주고 마음대로 놀 수 있게 해 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글과 그림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문집작업을 한 것을 보면서, 단순하게 대상을 그려내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그림에 관심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전달을 위해서 필요한 컷을 구분하고 그림으로 내용을 전개하였다. 후에 중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과 방과 후 수업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수업을 선택하면서 그림의 표현방법은 더욱 폭이 넓어지고 발전하였다. 하교 후, 인터넷으로 방영되는 10대들을 위한 ‘프리큐어’같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면서 캐릭터의 표정과 동작 묘사에 관심을 보였다.

초등 6학년이 되기 직전 2월,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필인물화를 그리는 성인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유아적인 상상의 세계가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또래 아이들과는 관심사가 다르고 공유할 만한 것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여전히 학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곳은 학원이 아닌‘J 아틀리에’이며 원생은 성인들이라고 설명해주며 권유했더니 거부감 없이 응하였다. 지니는 ‘학원’에 간 것이 아니라 ‘아틀리에’에 간 것이다. 원장선생님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풍경 그림에서 사람이 많이 없는 것도 사람을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인물화 그리기가 그림의 기초를 공부하기에 좋은 교육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통합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통합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소통을 잘 할 수 없고, 어울리기 쉽지 않은 환경 속에 오랜 시간 노출된 우리 아이들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친숙하지 않은 또래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지 가늠할 수 있다. 아이들도 스스로 자존감 회복을 위한 시간과 휴식이 필요하다.

<슬라이드 48> J아트리에

<슬라이드 49> J아트리에

<슬라이드 50> J아트리에

J 아틀리에에 가는 것을 지니는 좋아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눈과 손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도를 받는다. 스케치를 위한 구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어느 쪽으로 할 것인지, 연필 터치는 어느 정도로 진하게 할 것인지, 4B연필은 어느 정도 길이와 각도로 깎으면 좋을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에 몰두하기도 하며 많은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화실에서 지니의 모습이다. 화실 선생님은 우리 집 얘기를 모르는 것이 없다. 그렇게 지니는 화실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 놓고 온다. 유명인들의 연필인물화를 완성하는데 작품 당 거의 2달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지니에게 화실 생활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휴식 장소였으며 회복의 시간이었다.

언제부턴가 특수교육에는 ‘OO 치료’라는 이름이 많이 생겨났다. 미술치료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이 바로 치료일 것이다.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스스로 치료 대상이라는 느낌 없이 효과를 얻는 것, 그것이 좋은 프로그램일 것이다. 주 3일을 그렇게 J 아틀리에 선생님과 즐거운 친교의 시간을 보내며 중학교 2학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J 선생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선생님은 화실을 정리하게 되었다. 미리 정해진 대로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하는 관계로 이어진 입시 미술학원 교육과정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지니에게는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정은미 교육학 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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