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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지니의 자존심
  • 정은미 (전) 특수교사, 교육학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
  • 승인 2018.08.2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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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가 전시회를 하게 되면서 전시도록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SNS에 전시회 내용을 올렸다. 그림에 관심과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자녀를 둔 부모님 이야기를 선생님들을 통해 듣게 되면서 ‘언제부터 그림을 가르쳤나요?’, ‘그림지도를 해 주시는 선생님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자녀를 둔 부모님께 상담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들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니에게 그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4, 5살에 그려 놓은 사람의 모습들, 초등학교 때 그려 놓은 학교생활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생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그림을 그려 놓은 아이더러 ‘화가가 되겠네’ 하면서 지지하고 칭찬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하교 후 귀가하면 다른 교육을 받기 위해 공간이동을 하지 않으니, 그 시간 동안에 누군가 옆에 있으며 어울려 주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는데, 마침 그림에 관심을 보여서 취미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기 바랬다.
동기부여를 위해 칭찬을 해 주었고, 자라면 화가가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꿈이 뭐야? (꿈이란 것이 무슨 뜻이냐?)’고 엄마한테 물어올 때, 자라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취미가 뭐야? (취미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올 때, 좋아서 즐겨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방과 후 활동과 동아리 활동은 ‘공예’, ‘만화반’, ‘애니매이션 그리기’, ‘언어연극반’ 등 이었고, 학생생활기록부에 적힌 장래희망은 늘 화가였다. 그림은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고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감의 표현이었다.

의욕이란 뭔가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의욕이 생길까?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이다. 그러면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하자였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가 있을 것이다. 장애 아이들에게 꿈, 취미활동은 아이를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찾아주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 하면서 학교교육과정 이외에 개별적으로 특수교육을 받지 않으니 귀가를 하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미술 학원에 가볼까?” 하고 물어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좌우로 젓는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힘에 부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친구 미숙이가 전해준 지니의 초등학교 1학년 한 해 동안의 생활은 교실에서 눈과 귀를 열어두고 오로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지내는 생활이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질문에는 짧은 대답을 한다. 그러나 질문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난 말이 아니었다. 늦되게 시작한 말이었으므로 또래 아이들에게서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말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도 못했다. 의지가 되는 담임 선생님과 친절한 친구들이 있어 학교가 싫지는 않지만, 그 공간에 있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와 잘 그린다.”
“나도 같이 그려볼까?”
“나 하나 그려줄래?”
“너는 어떻게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려?”

쉬는 시간 친구들의 이런 말들을 들으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학원에 가볼까? 라고 묻는 엄마의 질문에 고개 숙여 어두운 표정으로 답을 했던, 그런 반응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지니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뭉개진 자존감을 회복해야 할 시간도 있어야 했으며, 다음날 버틸 힘을 비축해 놓을 시간도 있어야 했다.

그림으로 동기를 부여받은 지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슬쩍 들이밀어 시선을 끌어내어 ‘잘 그렸다.’, ‘너무 잘 그린다, 대단한데.’ 같은 칭찬의 말을 유도하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었고, 캠프에서도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또 늘 가지고 다니는 자신의 그림 도구를 사용하여 아이들과 같이 그리기도 했다.


<지니는 항상 뭔가를 손에 들고 다닌다. 조기교실,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는 30cm 쯤 되는 미키마우스 인형이 낡아서 달아질 때까지 들고 다녔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미미 인형을 가지고 다녔는데, 외국 모델인 바비 인형은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에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들고 다니며 보여주었는데, 대학교 입학한 이후에도 그랬다. 이제는 SNS에 그림을 업로드하면서 뭔가를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코팅한 마스코트


지니의 그림이 닳아 망가지는 것이 안타까워 코팅을 해 주었는데,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문구사에 가서 다 코팅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서랍 속에 보관이 되어 있다. 지니는 코팅으로 단단해진 그림들을 가방에 아주 살짝 걸쳐서 상대방이 볼 수 있게 은근히 시선을 유도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행동은 아주 오래 지속이 되었으므로 캠프나 학교, 학원 등에서 지니를 아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기억하게 되었다.

코팅한 마스코트 캐릭터가 보이도록 가방에 넣은 모습(대학교 1학년 )


그렇게 그림으로 시선을 유도하거나, 코팅한 캐릭터를 자신의 마스코트처럼 가지고 다니는 행동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는데, 고등학교, 대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일러스트 프로그램으로 변환되어 더욱 섬세하고 정교해진 마스코트들이 언제부터인지 가방에 반쯤 걸쳐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리는 그림에 심취하면서, SNS에 그림을 업로드하여 평을 듣게 되면서부터인 듯하다.


“요즘에는 마스코트 안 들고 다녀?”
“아니 가방 속에 있어.”
“왜? 이젠 안보여 줘도 돼?”
“음... 글쎄”

정은미 (전) 특수교사, 교육학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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