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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8.09.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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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가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지니와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싶어서 나도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화실은 지니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친구 미숙이가 다니는 화실이었다.

그러던 중 고3으로 진급할 즈음, 지니가 다니던 입시 미술학원의 수채화반이 폐강되었다. 미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 순수미술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옮기게 된 화실이 바로 내가 다니던 화실이었으며, 우리는 같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제자가 되었다.

지니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전문 용어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공유하면 지니의 눈빛도 반짝인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동안 엄마를 따라 제빵학원에 다녔던 추억 덕분에 인터넷에서 빵 이름을 검색하여 재료가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지, 어떤 용도로 주로 먹곤 하는지를 줄줄 말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음식으로 확장이 되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모든 재료가 혼합되어 있어 반죽하여 오븐에 굽기만 하면 되는 재료들을 마트에서 함께 찾아서 사놓으면 집에서 혼자 만들기도 했는데 그렇게 만든 빵이나 과자를 가지고 학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환호하며 “지니야 이 빵을 니가 직접 만들었어?”하는 말을 들으며 열심히 그 일을 반복했다. 지니도 일상적이지 않은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TV와 인터넷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모니터에서 비춰지는 화려하고 맛깔나는 비쥬얼 덕에 지니는 요리와 여행 프로그램 시청 덕후가 되어있다. 어려서는 도대체 먹으려는 음식이 없어서, 밖에 나갈 때는 간신히 찾아낸 메뉴인 돈까스 도시락을 매번 준비해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후에도 외출 시에는 바삭한 식감의 튀김 음식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고, 제발 햄버거라도 먹어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폐성장애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와 부적응을 보인다. 화면으로 보이는 멋있는 영상이 시선을 유도하고,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재치 덕에 성인이 된 지금 지니는 낯선 나라로 여행을 하여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지니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니, 나는 지니가 눈을 반짝이며 함께 이야기할 대화 상대가 되어주어야 했다. 취미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란 더없이 좋은 삶의 동반자일 것이다. 특수교육을 만나기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학교교육이란 ‘삶의 현장’과는 별개인 다른 영역이었다. 특수교육은 삶의 교육이며 생활교육이었다.

특수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직업교육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공부하러 다녔는데, 지니가 4학년 겨울방학 동안 엄마와 함께 제과제빵학원 수강을 했던 경험은 평소 특수학급에서 직업수업을 받지 않던 지니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장애학생기능대회 제과제빵 영역 케잌 데코레이션으로 대회에 나갈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 선생님들과 함께 고안하여 지니가 만든 케익디자인. 깜찍하고 귀여워 시선을 끌었지만, 점수를 받을 만한 기술이 적용되지 않아 참가상에 머물렀다.

바리스타가 특수교육의 직업교과 수업으로 떠오르고 있어서 나도 학생지도를 위해 커피 바리스타를 배우게 되었다. 지니도 고3이 되어 방과 후 수업으로 커피 바리스타를 배웠다. 그리고 그해 운 좋게도 제1회 장애학생바리스타 대회가 열렸는데, 지니가 출전하여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한 지니의 인터넷 기사

학원 바리스타 강사에게 추천받은 바리스타용으로 판매되는 핫한 디자인의 앞치마를 구입하여 입었고, 서비스직에 어울리는 용모를 갖추어 빛나고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였고, 연합뉴스에 5컷이 업로드 되는 즐거움과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지니와 미술, 제과제빵, 바리스타, 애니메이션에 대하여 얘기를 나눌 때 적어도 우리는 그 분야의 언어인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눈다.

고3 겨울방학 중 장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캠프에 참가한 모녀를 만났다. 추운 겨울밤을 산장의 한 방에서 그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중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왜 엄마가 아이와 똑같이 움직이려 하느냐며 나를 채근하였다. 그들은 각자 사는 세상이 다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전에 참여하였던 캠프에서도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움직여서 마지막 날까지도 아무도 그들이 모녀 사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였다.

삶의 스타일은 각자의 것이다. 즐거운 추억을 위해서 참여한 캠프이기에 우리 모녀는 서로 다른 조에 속해 있으면서 프로그램 활동 중 마주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콧소리를 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런 추억 만들기는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야기의 소재와 기억만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양이란 그리 많지도 깊지도 않다.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세상은 더 이상 무료하지도 않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교육학 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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