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특수교육대학원 석사과정 1학기에 ‘장애인 여가문화’과목을 수강하였다. 눈 내린 한라산 정상을 지체장애아들이 Hand Walking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장애인 여가문화’라는 영역과 ‘여가문화’라는 단어를 만드신 교수님은 장애아들에게 여가가 가지는 의미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놀이도 학습이 필요하며, 아이들은 체험을 통하여 이전의 경험들이 재구성 된다고 말씀하셨다(김송석, 2004, 특수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수업내용).

지체장애 특수학교 학생들의 도심 극복 훈련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제는 파란불이다(KBS, 1986)’를 보여주시며 ※장애인복지형상회’ 여름 캠프에 와보라고 하셨다. 초등 4학년 지니와 6학년인 지니 오빠, 근무하던 특수학교 담당학급 학생 중학교 1학년 J와 함께 참여하였다. 방학 중에 큰 맘 먹지 않아도 3박 4일간 지니와 떠날 수 있는 곳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캠프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장애인복지형상회는 사전 모임을 통해서 장애아와 봉사자가 일대일로 짝을 지어서 ※라포를 형성하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캠프에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한다. 나는 캠프를 통해 장애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을 하고 싶었다. 캠프에서 지니와 나는 각자 짝꿍이 배정되었다. 서로 다른 짝꿍으로 캠프에 참여하면서, 지니와 나는 할 얘기가 더 많아졌다.

지니는 또래 친구가 많지 않다. 그러나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지니의 자라온 환경을 되짚어보면 완전통합교육에서 어울릴 만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음도 있을 것이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하게 되는 상대에 대한 관심 없음과 ‘마음 읽기’가 잘 되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친구를 사귀기 위한 시도를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지니가 다니는 학교의 한 학생이 중학생이 되어 장애진단을 받게 되자,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께 의뢰하여 소개받게된 모녀가 있었다. 그 친구 엄마의 요청으로 두 아이의 어울림을 시도해 보았으나, 서로가 가진 특성이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여 어울림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모했던 적 있다.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동반하면서까지 또래 친구를 사귀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장애인복지형상회에서 주관하는 월례산행과 방학 중 캠프 참여를 통해 친구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또래와의 교류인 것 같아 계속 참여하고 있다.

특수교육대상자 중에는 조기개입을 하지 않고, 완전통합으로 초등학교 또는 중학과정까지 마치고, 10대 중반에 접어들어 장애진단을 받고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조기에 아이의 상황을 부모가 인지하지 못하고 다만 늦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적응해서 좋아질 것으로 알고 굳이 드러내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으로, 아니면 드러낼 용기가 없어, 속된 말로 버티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완전통합에서 어울리지 못하여 이런저런 상담을 받다가 결국 장애진단을 받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을 표현하기에 취약한 아이들이고, 이런 상황에 오기까지 아이는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아이의 존재는 그대로이지만, 주변 상황은 달라져 있다.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낯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고 소속된 특수학급의 아이들은 예전 완전통합의 아이들과 다르다. 매우 쉬워 보인다. 그 아이의 혼란스러움은 완전통합시절에 자신이 주변 아이들에게 받았던 상처를 그대로 매우 쉬워 보이는 특수학급의 아이들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당사자인 본인도 힘들고 기존 특수학급의 아이들 또한 새로 입급한 아이가 어렵다.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특수학급 아이들이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분위기에 예민한 특수교사는 이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전공과에서 특수교육대상자로 처음 입급한 어떤 학생의 경우 특수학급 아이들이 그 아이 주변에 잘 가지 않는다거나, 조심하는 모양들을 보였다. 뒤늦게 입급 된 학생은 특수학급 학생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인식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어울리려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게 아이들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다. 전공과에 입학하여 취업으로 연계를 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학생은 입학 목적대로 취업했다. 그러나 그 학생의 앞날이 불안 불안하다. 취업이라는 것도 구성원과 어울리는 것이며, 우리가 산다는 것은 주변과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 특수학급에 입급한 학생이 있었다. 특수학급에 한 학생이 들어오니 반가운 마음에 학생들이 들썩였다. 또래 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통합학급 담당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특수학급 다른 학생의 부모님이 연락하셨다. 교통카드에 입금한 비용이 금방 사라진다고. 핸드폰의 통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아이들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고. 방과 후 프로그램에 가지 않았다고.

이 학생은 수차례의 상담을 거쳐,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을 취소하였다. 학생 당사자에게 도움 되기보다는 다른 학생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행동을 하게 하는 공간이며, 기존 학생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했다.

장애는 당사자 우선으로 당사자 관점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녀의 장애와 관련된 결정을 하는 부모들은 누구나 다 이런 갈등 속에서 선택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문제를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가 오히려 아름답게 비쳐진다. 자녀의 문제를 덮고 싶은 무모함도 용기이다. 그러나 긴 앞날을 바라볼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은 아름다운 용기이다.

※장애인복지형상회는 장애인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의 건설을 지향하는 자원활동가들의 모임이다. 매월 월례산행을 하며, 방학 중 캠프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kdgudgh)에서 신청하면 된다.

※라포 :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용어. 서로 마음이 통한다든지 어떤일이라도 터놓고 말할 수 있거나, 말하는 것이 충분히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상호 관계를 말한다.

정은미
(전)특수교사, 교육학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 안정, 세아담 대표
http://cafe.naver.com/familyculture16
jem9123@naver.com

서영석 기자  webmaster@gwelf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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