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는 학교생활 중이나 하교이후에도 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보면서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에 몰두해 있었으므로 스케치북이나 A4용지들에 그려진 습작들이 늘 수북하게 어지러이 쌓이게 되었다. 또한 그리는 것이 지니의 놀이이다 보니 색연필, 크레파스, 물감 중에서 자주 사용하여 없어진 색을 채우기 위해 문구사, 마트의 화구코너, 화방에 자주 들르게 되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은 처음에는 재료가 무르고 손쉽게 표현되는 크레파스를 사용하게 된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옷이나 주변 오염이 심하다. 색연필로 채색할 때는 연필을 쥔 손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만큼 채색의 진하고 연한 정도가 달라진다. 물감을 사용하게 되면서 물감을 여기저기 묻히기도 하고 물을 쏟기도 하고, 밑그림에 칠한 물감이 번지기도 하고 물감 칠한 그림을 겹쳐 놓아서 달라붙기도 하는 등의 재료 사용에 따른 시행착오를 초등학교 생활 내내 오래도록 경험하며, 스스로 재료 사용법을 터득해갔다.

물감을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A4용지에 물감으로 채색을 입힐 때는 휴지로 붓에 묻은 물의 닦아내는 방법으로 물감의 농도와 색을 조절하였고, 색연필로 채색할 때는 힘을 조절하여 고르게 채색을 하는 기교를 터득해 나갔다.

지니는 친구들을 사귈 줄 모른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사귈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 것 같고, 사귀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그런 삶이 너무 익숙해 보인다. 그런 지니에게 내가 얼마동안 함께 해 줄 수 있을까를 가끔 생각하게 되고, 마지막까지 함께 갈 친구 겸 동반자 한명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며, 지니가 필요 할 때면 함께 있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 둬야 함을 절실하게 생각한다.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까지 생각하기에는 현실이 많이 버겁지만, 그래도 지니의 엄마로서 이것은 꼭 준비해 둬야 할 것들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서 인적네트워크가 촘촘해 질수록 아이들과 가족들의 행복지수는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많지 않은 지니는 일주일이 지루해 보이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화실에 다녀오고, 일러스트 작가로서 시간 운용이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주어진 과제대로 일러스트 스케치를 하여 SNS에 올려 선생님들의 평가를 받고 수정을 하거나 채색을 하여 다시 SNS에서 확인을 받는다. 좋아하는 신작 애니메이션 영화가 상영될 때는 스스로 영화관에 가서 챙겨 본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수시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검색하여 본다.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지금 작업이 마무리되어 출판이 되면 지니가 그린 그림이 인쇄된 책을 서점에서 구입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니에게 말했다. “지니는 지금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잖아. 그림은 창작활동이지. 창작은 새로운 것을 그려내는 것이야. 새로운 것을 그리려면 주변의 많은 것을 탐색해 보아야 할 수 있어. 그러니 자주 길을 걸어 보아야 하고 차를 타고 지나갈 때도 창밖을 보면서 창작의 모티브를 찾아야 하는 것이야.”

현재 지니가 작업하고 있는 것은 일상의 삶을 표현하는 일러스트이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니가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림으로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삶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지니는 아스퍼거인이다. 아스퍼거인의 결핍은 다양한 맥락에 걸친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지속적인 결함이라고 정의한다.

지니는 지역사회의 삶을 표현해 내기 위해 사회적 의사소통을 눈여겨 봐야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내용을 표현해 내야 한다. 이제는 지니가 자기만의 ‘비밀 장소(Secret Place)’를 자유롭게 활용하게 되었으므로, 지니가 가지고 있는 결핍의 요소를 지니가 해내야 하는 일로 연결시켜서 스스로 갇혀있는 테두리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 자폐성장애인 그리고 아스퍼거인 중 그 어느 것이라 한들 지니는 누군가의 돌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개인적인 돌봄의 정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볍고 무거운 사람들로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돌봄은 각자적이며 개별적이다. 삶 또한 일회적이다. 장애라는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군가는 떨쳐내지 못해 애쓰는 평범을 추구한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취업을 하든 취미생활을 하든 아이들의 삶의 터전은 지역사회이다. 지역사회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어 가면, 함께 어울리며 여가를 즐길 만한 자원을 찾을 수 있으며, 경험의 확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은미
(전)특수교사, 교육학박사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안정, 세아담 대표
http://cafe.naver.com/familyculture16
jem9123@naver.com

서영석 기자  webmaster@gwelf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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