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보기외 3인에 의하면 서양의 장애관점은 크게 4가지(도덕적 관점·의료적 관점·우생학·사회적/소수집단 관점) 관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번째 장애에 대한 관점들 중에 가장 오래된 도덕적 관점은 장애는 죄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으로 이 관점은 인간역사의 초기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서양에서는 중세시대까지 지배적인 사고로 지속되어 왔다.
고대유물의 조사에 따르면 신석기시대의 부족은 장애인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정신을 소유한 것으로 인식했고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장애인을 들판에 버려 죽게 만들었다. 현대 윤리학의 틀을 제공한 플라톤도 장애인이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는 저서 ‘공화국(The Republic)'에서 “불완전한 신체를 가질 확률이 있으면 열등한 자의 자녀들이나 우세한 자의 자녀들 가릴 것 없이 모두 그 들이 가야만 하는 장소인 비밀스럽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장소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특히 아테네로부터 호혜주의의 개념을 이어받은 로마제국은 장애인에게 원조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장애인의 사회에 대한 감사의 표현과 원조제공자의 자기만족과 배려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은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 장애인이 죽도록 공공연히 유기하는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
중세이후 유럽인들 사이에서 장애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이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각에 의하면 장애인은 신의 불쾌감이 표출된 결과라는 것이다. 비록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기독교적 철학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박애를 강조하지만 중세 때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추방과 배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성경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언급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난쟁이, 장님, 기형자가 성직자가 되는 것을 금하였다. 신약성서에는 정신병자를 악마에 홀린 사람으로 규정한 부분이 있다. 이는 장애인들이 그들이나 부모가 저지른 죄의 결과로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애를 죄악과 열등에 연결시키는 전통은 오늘날의 사회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장애가 장애자나 장애자가족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혹은 전생에 맺은 인연의 탓으로 돌린다. 장애의 정도에 상관없이 단지 장애라는 이유로 취업과 진학을 포함한 사회의 많은 영역들에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차별의 근원도 부분적으로 장애에 대한 도덕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자신이나 가족의 장애에 대해 “왜 내가?”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렇게 착한 네가? 하늘이 원망스럽다”라는 말에도 장애가 죄와 관련되어 있다는 도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나타난 의료적 관점은 오늘날 장애를 규정짓는 데 있어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관점이다. 18세기 중엽에 유럽에서 계몽주의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사상의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는 ‘인간은 완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에 근거해서 장애인을 생물학적 부적절성, 즉 병리학에 의해 규정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료적 관점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출현하였다.
이 관점은 장애인은 부적절한 사람이며 이러한 부적절성은 전문가의 개입에 의해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장애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장애인은 최소한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 기능적이 되도록 훈련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의료적 시각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의료적 관점은 장애인의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치료해주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도덕적 관점보다 월등히 인간적이고 자애적이다. 하지만 이 관점도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이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의료적 관점에 따르면 장애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치료됨으로 인해 적절한 존재가 된다. 이는 결국 장애인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비장애인은 완전한 존재임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일렬선상에 나란히 서 있는 생김새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우열이 가려지는 존재로 비교될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장애인의 장애는 완전한 존재인 전문가의 개입이나 도움에 의해 치료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의료적 관점은 장애인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독립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의료적 관점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장애인은 전문가에 의해 보호되고, 감독되고, 규제될 필요가 있다는 전통이 다양한 의료 및 사회복지 영역에 남아 있다.
세 번째 관점은 우생학적 관점이다. 19세기 말엽부터 다아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사회 구조와 변동 그리고 개인의 신체적이고 지적인 속성과 능력을 진화론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진화론 또는 우생학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우생학은 사회적으로 이로운 사람과 신체적 요소는 발달시키고 반면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과 신체적 요소는 재생산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시각에 근거하여 우생학은 도덕적 관점과 의료적 관점의 부정적인 측면과 연결되면서 사회의 병폐를 설명하는 편리한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또한 장애인을 위험하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을 찍는데 기여하였다.
한편 당시의 의료기술로써는 장애인을 적절히 치료하지 못함을 알게 되면서 장애인을 상대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의료적 모형에 대한 신뢰를 읽기 시작했다. 대신 이들은 장애인이 본래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존재이며, 비생산적이고 버림받은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우생학인 요소가 첨가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장애인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장애인을 대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관점이 널리 퍼졌다. 이로 인해 장애인은 20세기 중반까지에 걸쳐 계몽주의 시대 이전에 행해졌던 장애인에 대한 대우를 다시 받게 되었다.
장애인의 혼인은 저지되었고 더군다나 자녀의 출산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협박, 테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고립되어 기관과 시설에 수용되는 비율도 증가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과 유렵사회에서는 많은 상이군인들이 발생학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장애는 개인적 요인이 아닌 사회적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비장애인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두 차례의 전쟁기간 동안 장애인 특히 상이군인을 위한 법제정과 재정지원, 시설투자, 재활프로그램개발 등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표면적인 측면이 강해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우생학적 시각에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194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나는 소수집단 관점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근원을 장애인에 대한 편견적인 문화에서 찾고 있다. 특히 이 관점은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또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장애인을 고용하자”라는 정책이나 구호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취업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장애인은 일을 해서는 안되고 대신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문화적 가치는 오늘날의 다른 사회복지체계와 마찬가지로 160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구빈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 구빈법은 빈민계층을 통제하고 동시에 빈곤계층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구분함으로써 노동력의 경쟁력을 유지시키려는 법적인 시도였다. 고아, 맹인 등의 불구자는 지원받을 수 있는 자격을 본래적으로 타고 태어났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이들은 소위 자격이 못되는 비장애인에 비해 정당한 방식으로 보다 많은 자선의 혜택이 주어졌다.
장애인을 당연히 도와주어야 하는 빈곤층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혜택이 아닌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혜택은 최저의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으로 하여금 서비스에 더욱 의존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 의해 오늘날의 장애인 사회복지체계에는 장애인은 구태여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근저에 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장애인을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모사하게 하여 더욱 무능력하고 비생산적으로 만들고 또한 기존의 권력구조에 장애인을 계속해서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통적인 의료적 패러다임은 장애의 속성을 개인의 결핍과 장애의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규정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수집단 모형은 사회화 사회의 믿음, 그리고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차별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장애아동이 일반 학교에 취학하지 못하는 것을 소수집단 모형은 장애아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장애아동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한다. 즉 장애인들은 소수집단으로서 그들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거부된 것이다.
소수집단 관점은 장애인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소수집단인 여성과 흑인의 권리 및 지위가 크게 신장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의 이면에는 이들이 스스로 벌여나간 적극적인 사회운동과 정치참여활동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수집단 모형은 장애인의 권리와 지위를 신장시키고 아울러 사회의 왜곡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기 위해 비장애인 주류 사회의 소수집단인 장애인이 동정의 대상으로 남지 말고 대신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활성화시킬 것을 강조한다.
소수집단 모형에서 장애인은 전통적인 모형에서와는 다른 역할과 지위의 변화를 겪게 된다. 장애인은 서비스제공자들의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활동적이고 능력있는 소비자가 된다. 장애인은 자신의 모자람과 문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확인하고 그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고 그리고 자신이 통제력을 갖고 자기 인생을 일구어 나간다. 개인적인 결정은 수동성에서 벗어나고 장애인 스스로에 의한 능력강화는 무기력과 무능을 대체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역사의 초기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도덕적 관점은 장애인을 죄악과 열등에 관련시켰고 18세기 중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장애를 규정짓는데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의료적 관점은 장애인은 불완전인간으로 치료의 대상임을 명문화 시켰으며 19세기 말엽부터 대두된 사회진화론 혹은 우생학 관점은 장애인을 기능적 한계성과 연계시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는데 기여했고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사회적/소수집단 관점 등에서 나타나는 가장 핵심적인 용어는 차별이었으며 그것을 적용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공통적으로 장애인을 부정적인 시각의 대상으로만 취급했던 도덕적 관점, 의료적 관점, 우생학의 전통적인 관점과 다른 하나는 장애인을 소수집단이긴 하지만 하나의 존재로써 바라보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해야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소수집단 관점이다. 특히 사회적/소수집단 관점은 장애를 사회적으로 형성된 현상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장애의 문제를 장애개인이나 그 가족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만들고 규정하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장애인이 차별받는 가장 큰 이유는 신체적․정신적 기능장애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를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사회적 요구는 사회소통능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이란 사회적 요구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회문화적인 의미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문화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 지배가치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장애는 개별적인 기능 상태라기보다는 그 사회가 갖는 장애에 대한 가치 체계 및 정서구조와 깊이 연관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장애와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그 사회가 장애를 규정하는 방식에 있으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근원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적인 문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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