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2015.11.21.)』 시행되면서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의 내용을 쉽게 풀이해서 제공해주는 일들이다.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생겨나고, 글을 쉽게 풀이하여 다시 쓰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삽화가 포함된 책들을 만든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해 일하는 단체에서는 일러스트와 관련된 직무를 개발하여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훈련하여 취업과 연결한다. 그런 직무가 개발되어 펼쳐지고 있으니, 이제 지니(가명, 필자의 자녀)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지니가 2년에 걸쳐 작업하고 있는 일러스트는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의 사회·정서 기술향상 프로그램(가칭)’이다. 글로 쓰여 진 내용을 이해하거나 흥미를 가지기 어려운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여러 상황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상당량의 그림이 포함된 내용으로 구성된 책으로 선생님들께서 쓰신 원고에 따라 상황에 맞는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작업을 이끌고 계신 J 선생님께서 지니의 그림 샘플을 보시며, ‘이정도면 프로’라고 하실 때, 내가 듣고 이해한 대로라면 그림의 양이 절대 적지 않은데, 과연 지니가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궁금했고, 걱정도 되었다. 이제껏 지니가 몰두한 캐릭터는 일본 만화 주인공들의 변형으로 보였는데, 지니가 캐릭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섬세하게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한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밤을 홀딱 새우는 것이 예삿일인데, 저 많은 것을 언제 그려낼 수 있을까. 또한, 지니의 캐릭터가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며 조금씩 변형되고 진화되고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유사한 느낌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러스트 과제로 표현된 그림들은 이제까지 보아오던 그림들과는 달랐다. 그림을 보면서 지니가 다양하게 표현할 능력이 충분히 있으며 그런 것을 펼쳐 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러스트를 그리기 위해 다양한 동작들을 표현해내야 하므로, 프리랜서 작가로 재택근무를 하는 지니를 위해 가족들이 모델이 되었는데, 스마트 폰에 찍힌 모델의 동작을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해내면서 주인공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자극하고 이끌어낼 기회가 많아져야 함을 지니가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소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에서 나타나는 논리적이지 않은 이야기의 흐름을 평론가들은‘의식의 흐름’이라는 글쓰기 기법으로 명명했다. 한마디로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말하고 쓰는 장애아들의 얽매이지 않은 의식의 자유로움은 그냥 ‘장애’일 뿐인가? 한준상은‘인간은 배움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배우고 익히게 되어 있다. 한 인간에게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 비어 있는 여백이 있고, 배움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학습활동을 통해 그 여백을 수없이 넓히게 된다고 하였다. 장애아들의 ‘의식이 흐르는 대로 말하기’는 그들이 가진 또 하나의 여백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논리적이지 않음은 그들의 의식 사이에 ‘여백’이 있음이다. 학습의 본질이란 스스로 ‘의미 찾기’와 ‘의미 만들어 내기’이므로 교사나 부모가 해야 할 장애아들을 위한 교육은 그들의 ‘여백’을 무엇으로 채워갈 것인지를 모색하며 함께 하는 것이다. 소통 방법이 다른 것이다.

일러스트 작업 내용 1

일러스트 작업 내용 2

일러스트 작업 내용 3

일러스트 작업 내용 4

일러스트 작업 내용 5

지니의 일러스트 작업모습

정은미 교육학 박사 / 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webmaster@gwelf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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