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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행복한 아빠 이원진입니다 (칼럼)
   
 

[강원종합복지신문 편집팀]

제1회 강원도 장애인 자립생활수기 공모전 / 장려상


저는 행복한 아빠 이원진입니다.

이 원 진

저는 올 해 서른셋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빠 아원진입니다.
저는 어린시절 일찍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며 남의 물건을 빼앗고 친구들도 괴롭히며 못 된 짓을 많이 하며 보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기초생활수급비로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술먹고 쓰러져 간질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 다니며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지적장애인센터를 알게 되었지만 수업에 자주 빠지면서 센터도 잘 나가지 않고 그저 친구가 더 좋아 놀기만 했습니다.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부장님을 비롯해 모든 선생님들께서 센터에 나오기를 권유하고 바른길로 인도 하려 했지만 저는 아랑 곳 하지 않고 철 없이 싫다고 하고 저를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며 뿌리 쳤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작은집에서 함께 살며 친구들을 불러 들여서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의 뱃속에 새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이제 내가 책임을 져야할 가족이 생겼는데 이렇게 친구들만 좋아하며 살다가 큰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누나들에게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누나들은 지적장애인이 무슨 결혼이냐며 모질게 대하였습니다. 이런 반대에 부딪힐 줄은 생각하지 못한 저는 아내와 뱃속의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힘들었습니다.
결국 저와 아내는 살던 집에서 쫒겨 났고 오갈 데가 없이 거리를 방황하며 배가 자꾸 불러오는 아내를 데리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기도 하고 지적장애인 친구 집에서 자기도 하며 어떻게 할지 몰라 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센터에 찾아가서 지부장님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지부장님께서는 저희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으시고,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따뜻한 보금자리라도 마련해야 한다 하시며 복지관, 주민센터, 강원랜드복지재단을 통해서 살아 갈수 있도록 알아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 아담한 집도 마련해 주시고 도배, 장판도 다시하고, 가전제품, 장롱도 모두 장만해 주셨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병원도 미리 알아봐주시고 예정일에 맞춰 예약도 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저희를 위해 끝까지 애써 주시고, 임신한 아내가 아이를 가져 힘들어 할 때도 가족과 같이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우리의 보금자리도 정리정돈도 센터에 함께 이용하는 형, 누나, 동생들과 선생님들께서 도와 깨끗이 집을 단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이곳저곳 후원을 받아서 집에 필요한 살림살이와 아기용품 등 필요한 것을 지원 받아 하나하나 마련하고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작년 따뜻한 봄에 예쁜 공주가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우리 둘은 아이의 이름을 ‘해원’이라 지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목욕시키기, 젖먹이기, 기저귀 갈아주기, 밤새도록 울다 재우고 힘들었지만, 그 중 가장 힘든 일은 해원이가 아플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천사같이 웃어주는 해원이를 보면 힘이 나고 저도 같이 웃게 되고, 또 옹알옹알 ‘엄마’, ‘아빠’ 할 때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를 이렇게 아끼며 키우셨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아장아장’ 두 손 잡고 걸을 때쯤, 사랑하는 해원이의 첫 돌이 되었습니다. 센터와 자조모임에서 많은 준비를 해주시고 해원이의 돌잔치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저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센터를 아내와 함께 다니면서 직업재활과 자립생활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익히던 중 센터에서 역도 훈련 중인 선수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힘이 좋은데 하는 생각에 역도 기구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43Kg의 작은 체구인데 가능 하겠느냐며 걱정 하셨지만 ‘저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결국 해보라고 허락하셨습니다.
혹시라도 다칠까봐 지부장님께서 역도 기구를 이용할 때 자세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역도를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저의 체중은 43kg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를 배우며 훈련을 시작하고부터 저의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이 발달하여 50kg이 되었습니다.
저의 변화를 보시고 지부장님께서 데드리프트 해보라 하셨습니다.
제가 무리 없이 하는 걸 보시고 놀라셨습니다. 저에게 ‘훈련을 하면 너는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도선수로서 당당히 썰 수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수개월 열심히 훈련한 저의 가능성을 보셨는지 지부장님께서 역도대회에도 출전해 보자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센터에서 수업 후, 틈틈이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훈련하고 ‘무엇이든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을 가지며 기량을 키우고, 꾸준히 훈련에 임하던 어느 날, 국장님께서 올해 ‘너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올해 저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는 힘이 났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역도 훈련에 제 모든 열정을 쏟고 훈련에 임해서 전국역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대회를 다녀 온 저에게 아내와 딸 해원이도 ‘아빠!’하며 축하해 줘서 어깨가 으쓱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역도대회에도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준비는 지적장애인센터와 삼척시 복지박람회 식전 행사로 추진해 주셨습니다.
결혼식 날 하늘도 우리를 축복하는지 맑은 날씨와 많은 시민들 축복 속에서 저희는 백년의 가약을 맺었습니다. 개구쟁이 딸 해원이도 엄마, 아빠를 축복해 주는 듯 해 맑게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 순간들이 꿈만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 끝까지 저의 끈을 놓치 않고 붙들어 주셔서 지금의 저희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결혼식 후 저는 전국역도대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저는 더 큰 꿈을 품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역도훈련에 더욱 매진하며 선수로서 발전하고 아내와 예쁜 딸 해원이를 키우며 센터에서 좋은 교육을 지금처럼 받겠습니다.
무엇이든 저에게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게 이끌어 주신 분들께 저는 보여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당당히 나가 설수 있도록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편집팀  webmaster@gwelf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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